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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어느 이주 여성의 눈물</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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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주 여성의 눈물

아내는 중국 복건성 출신의 여성이고 아내의 친구도 충북에서 결혼생활에 접어든지 2년이 가까워오는 이주여성입니다.

▲ 박홍식 시민기자
아내는 중국 복건성 출신의 여성이고 아내의 친구도 충북에서 결혼생활에 접어든지 2년이 가까워오는 이주여성입니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출산한 친구와 아기가 보고 싶다고 졸라서 겸사겸사 충북까지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사는 곳은 고향내음 물씬 나는 한적한 시골이었고, 우리 부부가 도착했을 때 갓난아기는 고달픈 엄마의 한국생활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응석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가끔 아내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자신들의 외로움을 달래곤 합니다.

 

한국에 시집온 지 몇 해가 지났고 손녀까지 낳았으니 행복하게 잘 사리라 생각했지만, 저와 아내가 본 친구의 결혼생활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매일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부모님과 가족들 밥상을 차렸다고 합니다. 중국에서조차 해보지 않은 농사일을 거들었고, 일이 끝나면 몸통바지를 입고 집을 지켰답니다.

 

평생학습관이나 이주민지원센터에 가면 같은 이주여성들도 많은데 시부모님은 안 좋은 것 배운다고 잘 보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시내도 차로 20여분 거리고 사람보기도 쉽지 않은 곳이라 말 그대로 갇힌 생활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임신을 했는데 놀랍게도 임신 기간 중 산부인과는 딱 세 번 갔다고 합니다. 임신 확인 하러 한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정어머니와 만삭일 때 한번, 그리고 아기 낳을 때 한번 이렇게 세 번뿐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만삭일 때는 친정어머니가 돈을 줘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중에 철분제 한번 먹어보지 못했고, 일정한 소득 없이 돈 없다고 울상인 남편에게 흔한 과일 한번 얻어먹는다는 것은 사치 같아 보였습니다.

 

아내 친구는 자동차 내장고무에 파킹 끼우는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개에 1원씩 하루에3~4천원을 벌었지만, 이마저도 남편이 가져가면 남는 것은 퉁퉁 부어있는 손마디의 시림이었다고 합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친구는 부엌에 가서 무언가 준비를 하는듯했고 한참 만에 밥상을 차려왔는데 같이 간 제 딸아이가 젓가락을 못들 정도로 조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차라리 형편이 어려워 옛말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라고 이해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내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생활 힘들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비라도 한 듯 그녀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니, 그간의 서러움이 밀려왔겠지요.

 

이국만리 부모형제를 떠나 평생을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할 운명을 택한 여성에게 왜 이런 생활의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아내 친구는 아기가 울면 자기도 따라 운다고 하더군요. 아기를 어르고 달래야할 아기엄마가 아기가 울 때 더 서글픈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제 아내도 같이 울었고 저 또한 감정이 붇받쳤습니다.

이 암담한 현실의 벽에서 아내나 저나 달리 해줄 것이 없다는 게 더 가슴 아팠습니다.

 

너무 힘들면 다른 것 하나도 보지 말고 아기만 보고 살라고... 얼마나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럽냐고...이 말만 남긴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이국만리 망망대해를 넘어 한국결혼을 결심하고 악착같이 정착하려 애쓰는 이주여성들을 바라보며, 저 또한 그 가족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진정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평생 친정이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밖에 갈 수밖에 없고, 힘들어도 고향녘 별을 보며 눈시울을 붏혀야할 운명을 선택한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의 약자이며 항상 관심을 가져야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정부에서도 2006년부터 다문화가정에 예산을 심도 있게 책정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산시에는 300여 다문화가정이 정착했으며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사회가 다민족사회가 된 만큼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민족개념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못하는 나라의 여성이라 홀대하며, 한국이라는 용광로에 다문화를 융합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문화가정은 중앙 일간지 사회면에도 심심찮게 오르는 가십거리이며, 다문화 가정의 2세들도 초등학교에 가방을 메고 다닐 정도로 훌쩍 성장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에는 다문화가정과 이주여성은 아직 이방인 인듯해 씁쓸해질 때가 많습니다. 백의민족이라는 한국인의 정서에 다문화사회가 융화되기에는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전란 후, 지금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에티오피아, 타이, 필리핀, 중국 등의 원조를 받은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미군의 초콜릿을 얻기 위해 달음박질 하던 세대가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홀대하고 쉽게 대한다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이런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한국인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인권교육이나 교화성 프로그램은 요원하다는 겁니다.

 

전문가적인 견해와 교육을 할 만한 인력양성도 미흡하며 위와 같이 사례를 통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허나, 아직 한국사회는 갈 길이 멀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미미할지 모르나 우리의 작은 노력 하나하나는 결국 변화하는 다문화국가를 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향후 우리의 2세에게 남겨줄 더도 없는 자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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